[강원도민일보┃도민시론┃정치·사회] 민주 공화국의 응답, 공동체의 복원
어제 사법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계엄 선포 행위를 내란으로 규정하고 내란 우두머리였던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개인적으로는 말 많았던 재판 과정, 납득하기 힘든 내란의 동기나 양형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따지고 싶지는 않다. 어쨌거나 유죄에 무기징역으로 일단락됐고 재판부의 세세한 판단 이유들은 국민이 느끼는 내란 사건과 그 재판 결과의 사회 역사적 의미에 비하면 지엽말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록 무기징역이 중형이기는 하지만 이는 단순한 형사 처벌을 넘어 대통령 권력을 오남용해 헌법 질서를 파괴하려 했던 일탈에 대한 민주 공화국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민주 공화국으로 존속하는 한 2026년 2월 19일은 자유민주적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려던 권력의 폭거를 단죄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윤석열의 파면과 무기징역 선고로 1987년 시작된 짧은 역사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마침내 완성됐다고 선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한 고비를 넘겼을 뿐이라는 불안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조반유리(造反有理). 반란이 일어날 때는 다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을 부추기기 위해서 했던 말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역사를 봐도 멀쩡한 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반란이나 혁명은 부조리가 쌓이고 쌓여서 터져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 곳곳에서 극단주의가 발호하는 것에서 보듯 그 부조리 이면의 좌절과 분노는 결국 민주주의 자체를 붕괴시키려는 파괴적 힘이 된다.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아무리 순화시킨다고 해도 터져 나
오는 그 힘을 가둬놓기는 쉽지 않다. 민주주의는 방향만 보이는 목적지일 뿐이어서 반대 방향으로 가려는 사람들을 멈춰 세울 수는 있다. 2024년 12월 3일 이후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회는 그 일을 잘 해냈고 어제 일단락시켰다. 하지만 자유, 평등, 참여, 다수결, 기본권 같은 민주적 가치를 선언하고 지켜내는 것과 그 가치를 새롭게 실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능력이다. 최악을 막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최선을 위한 수단이라고 믿는 것은 무능으로 빠지는 길이다. 비단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가치를 최우선에 놓는 사람들이 쉽게 빠지는 오류이다. 가치로서의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실질적인 그 무엇이 필요하다.
집행 능력, 추진력, 전문성 등등이 그 무엇으로 언급되곤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그 부분에서는 탁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사회적 결속이 중요하다. 여전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정당하다고 믿고 이재명 대통령을 무작정 비난하는 사람이 20퍼센트를 넘는다. 이견과 갈등이 증오와 혐오로 변질되면 민주주의는 곧장 무력화된다. 불평등이 심화되고 지역·세대·계층이 자신의 문제에만 몰입해 상대를 적으로 상상하는 순간 민주주의의 토대는 붕괴된다. 민주주의가 시작된 이후 40여년 간 당연한 비용으로 감내해 왔지만 이제 위험수위에 다다른 것도 사실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복원하지 못한다면 다음 고비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송현주┃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학사·석사 △미국 University of Missouri 언론학 박사